말하지 않아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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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드레날린 24>
 
내 여친은 시선을 즐긴다. 집에서 하는 것으로는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몰래하는 섹스를 즐기는 타입이다. 일본 AV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처럼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와중에 손가락으로 핫스팟을 만져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를 좋아하지만 그녀의 취향을 맞춰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굳이 야외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녀의 욕구를 풀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한 방법이 번화가로 차를 몰고 가서 도로변에 주차를 하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주차를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카섹스를 즐겼다.
 
비오는 날 만나는 게 좋았다. 전부 우산을 쓰고 다녀서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공원에 가서 인적 드문 곳을 찾아냈다. 목표물을 처치해야 하는 암살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런 긴장감을 무엇보다 즐기는 것 같았다. 나는 당연히 그런 긴장감이 싫었다. 그런데 점점 쾌감처럼 느껴졌다. 절정에 다다른 순간이면 어려운 미션을 성공시킨 듯, 개운함이 두 배가 됐다.
 
집에서 하는 따분한 섹스는 재미가 없다. 누가 더 돈을 많이 가졌나, 누가 더 유명한가를  비교하는 경쟁사회에 찌들었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나도 여친의 취향을 점점 닮아간다는 걸 느낀다. 친구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여친이 그런 행동을 좋아한다는 반전 때문에 더욱 쾌감을 느낀다.
 
여친과 나는 어느새 좀 더 과감한 시도를 바랐다. 여러 장소를 물색하던 중 클럽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클럽은 모두가 즐기는 분위기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여친과 약속을 잡은 뒤 저녁을 먹고 클럽으로 향했다.
 
시끄러운 일렉트로닉 음악 속에서 여친이 내 손을 잡고 중앙 스테이지로 끌고 갔다. 그녀가 점점 리듬을 타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꽤 놀았었나보다’ 싶은 춤 실력이었다. 나는 춤을 잘 못추고 클럽을 자주 들락거리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리듬만 타면서 스텝을 밞을 뿐이었다.
 
점점 음악 소리가 커지고 어떤 여자가 윗옷을 벗기 시작하자 그쪽으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이때다 싶어 여친에게 눈빛을 보내자 여친도 속옷을 벗기 시작했다. 가슴을 보여달라고 하니까 사람들에게 너무 집중 받으면 하고 싶은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속옷만 벗는다고 했다. 우리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가 중심 스테이지에서 섹스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일을 끝내고 열기를 식히고자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음료 두 캔을 산 뒤 차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잔잔한 물결을 앞에 두고 연인들은 다정하게 서로에게 기댄 채 담소를 나눴다. 우리는 사온 음료수를 마시면서 대화를 했다. 
 
방금 전에 우리가 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서로의 일과 부모님의 안부, 다음에 볼 영화, 음식 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다음에 같은 짓을 할 거란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즐기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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